오라돈 「면암 유행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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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점인 연미촌 회관

# 오라돈 일대에 개설된 면암 유배도

면암 최익현이 제주에 유형되어 머물던 곳은 제주시1당시 윤규환(윤규환) 집으로 알려진. 그러나 오라돈 일대를 그의 유통도로 했는데 분명 그와 관련이 있었다는 문연사(문연사)그리고 그는 한라산에 가서 거칠어질 것으로 예상(방선문)까지의 길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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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로실버 2010연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광역경제권 연계·협력사업에 제주대학 양진공 교수팀이 제안한 제주 유행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개발사업단에서 내놓은 사업이 그 대상으로 뽑혀 열린 길이다.

. 내용은 제주유로에서 나를 찾아라는 주제로 구 제주성을 중심으로 <제주성안도>, 오라돈 <면암 유로>, 그리고 오이읍 <추모유배도 3개 코스>있다.

면암의 유로는 2012512제주관광공사 제주 환영센터에서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대학이 주최, 제주관광공사가 주관하여 개장식을 열고 성대하게 길을 열었다. 코스는 연미촌 회관에서 방선문까지 5.5km, 2시간이 걸리는.


# 연미촌 회관에서 조설대까지

연미촌 회관 앞에는 제주 유배도 설명과 함께 코스를 그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 제주오라돈 4·3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 코스 중 해산이 다가오는 길은면암 유로와 상당히 중첩. 여기 영미 마을은 속칭 오라리 방화 사건더 많은 피해를 입은 마을. 1948년51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계속 발생 53일 귀순 공작55일 정상부 회담56일연대장 교환515일 단독 선거 등 4·3의 변곡점에.

마을 회관 앞의 작은 표시판을 따라 동쪽으로 잠시 가는 작은 골목(스피커7)접는 곳에(300m) 안내 표지판이 있음. 이어 미군의 4·3비디오 녹화 제주도의 메이데이(May Day on Cheju-Do) ‘나오는 불타는 오래된 집나타나다. 당시 불타는 6개의 집을 알리는 사진과 설명 안내판이 사실을 증언하도록 서 있다.

. 하지만 영정 사진처럼 검은 태를 감은 초가집은 아무 말도 하지.

건설대 앞에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 철문 왼쪽에 오라돈 네트워크 배단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웠다.

. 향토 타입 유산제11호인망배단은 왕의 등극과 물고기(붕괴), 황태자의 탄생 등이 있을 때, 멀리 떨어진 유림이 연고가있는 쪽을 향해있다.


* 가정계 광복 경비비

# 조설대의 가정계 광복 경비비

문을 열고 바로 왼쪽으로 집의계광복경비(가계의 광복 경비비)눈을 끄다. 뒷면에 선서문(선서문)를 새겼다.

고 등실버 반만년 歷史부정로 시작하는.

그 내용을 풀어 보면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걸어온 이 땅의 백성입니다.

. 우리는 제대로 부동한 조선의 독립을 바란다.

·개화 등 당파의 불질한 분쟁은 물론, 나라의 정치를 가르치는 간상 숲선과 왜구의 침입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의거로서 항거하는 것을 맹서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우국 충정과 예의의 도덕을 만천하에 밝히고 모든 백성이 감동하도록 행동하며 왜 녀석을 한칼에게 죽일 것을 모든 직원과 선언한다.

. 광업(광무) 93있다.

그 후 12직원의 이름과 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 당시 가계계 대표는 이은호(李膺鎬)이었다. 단기4320(1987) 광복절에 김승택이 세운 이 비의 문자는, 당시 문용사 사장은 김승상, 아침설 대주간은 이종억.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쓴 마음에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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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계의 애국적인 선구자와 조설 폭우

# 문용사

안으로 들어가자 소나무 아래 돌이 앞뒤로 나란히 서 있었다.

. 이전 가계의 애국적인 선구자’12사람의 이름을 새긴 비, 뒤로 조설대표석입니다.

. 하단에는 자연석에 새겨진 문자를 보호하려고 액자처럼 돌로 둘러싸. 안내판에 따르면 조설대1910년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을 때 12인의 소장파 율림이 가정계를 결성한 뒤 여기에 모여 광복투쟁을 결의하고 새긴 글로우 조선의 부끄러움을 전하고 싶다.’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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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집계의 멤버는 김이이, 소명금자겸, 백헌 김병로, 연수 김병구, 소야김이준, 석봉서병수, 모슨재의 타카이시구, 심재김, 모혼 스튜르호, 만각강석정, 야은 임성숙, 죽헌 김기수.


* 구 조설대 표지판

# 면암 최익현과 귤암 이기온

아시다시피 면암(勉菴崔益鉉1833~1906) 선생님은 19세기 말의 외세에 맞서 저항운동 선봉에 선 유학자다. 언관 자리에서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지적하는 항소를 올렸다.

1873년올 겨울 제주로 유형 13한 달 만에 풀려난 후, 오랫동안 저항운동을 하고 결국 의병을 일으켰지만 쓰시마에 구금되어 단식 끝에 절명.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문영사만나다. 문영사(문연사)원래 제주시 오라돈 2951번지에 있던 면암 최익현과 귤암 이기온의 유덕을 추도하기 위한 제단이다. 이전 비용에는 1977년 새 제주도시계획에 근거하여 여기로 옮기게 된 역사를 썼다.

. 그 위에 타치바나(귤암)그래서 큰 새겨진 암석이 소나무 아래에 비스듬히 놓여졌습니다.

, 얼굴 암의 문자이지만 진위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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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귤당 이 선생님제단이 나타납니다.

, 이기온(李基瑥) 선생님을 모시는 단이다.

. 귤이 제주에 지배된 옹호이익(艮翁李瀷)의 후손으로 면암에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장후진교육에 큰 공헌을 했다. 히가시야마 곳곳에 몇 문장이 새겨진 바위가 있지만, 오래되고 이끼가 끼어서 문자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속>

*이글은 2020년 1월 말 뉴 제주일보에 실린 필자의 글입니다.


*조설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