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Netflix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배신한 사람들 ‘방송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사이비 교주들의 악행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이며, 그들의 주변도 부패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아가동상 김기순 교주 측은 24일 방송 예정인 넷플릭스의 저는 새것을 대상으로 방송금지가 처분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신인 5회와 6회 아가동산의 방송을 완수해 볼 수 있을까, 다음 주까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가돈상 김기순 교주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김기순 교수의 탄생 배경과 내용
정보 매체에 따르면 아가돈산은 1982년 협업 마을이라는 신흥 종교 기관으로 출발했다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이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약자를 모아 사이비 종교 집단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대법원이 자신의 집단을 사이비가 아니라고 하는 부분을 가지고 더욱 사이비다운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김기순 교수는 1940년 11월 부산 출생이다.
주현교회에서 교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김기승 교주에게 주현교회는 그녀의 인생을 열심히 바꾼 계기가 되어 버립니다.
경현교회의 이교부야말로 김기승에게는 사이비사가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주현 교회의 이교부는 신도들의 머리를 삭발시켜 예배 중에 알몸으로 춤추는 사건 일명 ‘벌거벗은 댄스 사건’으로 세상의 주목이 집중됩니다.
이교부는 이틀에 동료 목사를 폭행하는 바람에 징역을 살고, 주현 교회는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1981년 주현교회가 사라지고 김기순 교주는 지금까지 이교부에서 배운 사이비다운 발상으로 이교부의 후계자로서 경기도 이천에 4천평 이상의 토지를 사들여 많은 신도들을 불러 수집합니다.
김기순 교주는 사업수단이 매우 밝았다고 합니다.
콜라보레이션 마을이라는 아이디어도 그냥 착취하는 것만으로는 너무 큰 재산을 모으는 것이 힘들었는데, 김기순 교주는 어려운 사람들을 모두 자신이 만든 아가돈산 커뮤니티에 몰아넣고 음식 장사를 시키는 등 수익을 발생시킨 것입니다.
또한 유명한 신나라 레코드를 만든 창업주이기 때문에 입이 맞을 정도입니다.
이전 1980년에는 레코드,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 할 시기였기 때문에, 이 아이템은 대박이 됩니다.
신나라 레코드의 성공으로 킹 레코드, 하나 레코드, 명반 레코드 등 자회사도 만들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김기순 교주는 이처럼 사업수단이 밝고 경영감각이 뛰어났지만 더욱이 그녀가 뛰어난 것은 이교부에 배운 사이비 교주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김기순 교수의 모습은 매우 놀랐습니다.
어려워서 배운 지식이 적은 사람을 이용하여 노동을 시켜 그들에게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계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기순 교주 ‘나를 아기라고 부른다’
조금 닭고기가 일어나기 시작하지만 김기순 교주는 자신에게 ‘아기’라는 호칭을 만들어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녀의 여러 가지 숭배라는 자료를 보면 아가야라는 말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예수 대신 아기를 사용하여 중독이 된 것 같습니다.
김기순 교주가 산 땅에서 1983년 본격적인 아가돈산 건설을 시작한 지 3년, 1985년 김기순 교주는 자신의 레코드 회사명을 따서 만들어진 집단의 이름을 “ 신나라」라고 선언합니다.
한마디로 신나라 이전에 아가돈산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 신나라라는 거대 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1982년 흩어진 주현 교회 신도들은 물론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아이들을 낳은 김기순 교주가 신나라라는 집단 농장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한일은 농사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기서 먹고 자자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관리를 마치 군대처럼 만들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나라 공동체 소속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려 18시간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농업일, 밤에는 기록 작업일을 해야 했습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멀리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JMS의 정명석 교주도 그랬지만 이상한 것입니다.
김기순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은 아가돈산에서 세 명을 죽이고 암매장의 혐의였다.
1998년 대법원에서는 김기순 교주에게 탈세, 횡령 용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한 것만으로 살인 용의는 무죄로 확정되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활기차게 한 아가돈산 사건의 살해 혐의는 총세였습니다.
1996년 12월 방송에서는 일제히 김기순 교주의 지명 준비를 대대적으로 방송했습니다.
살해 내용은 1987년 7세 소년을 1988년 과수원 남성 부부를 같은 해 김기순 교주의 아들과 교제한 여성을 때리거나 굶주려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죽은 아가동산 과수원의 남성 부부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단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장사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7살 소년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창고에 갇혀 물 한입의 안주는 바람에 결국 숨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기순 교주 자신의 아들과 교제했다는 이유만으로 21세의 창조한 여신도를 때리고 죽이게 한 것은 정말로 아가돈산이 사이비 집단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김기순 교주는 살인죄는 무죄로 판결되었는데요.
과수원 남성 유부녀의 아들이 당시 경찰에게 사건을 의뢰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내는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에 자살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로 납득이 없습니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다며 왜 아들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살펴보려고 했는가? 아가돈산의 세력은 정말 무섭다.
김기순 교주가 받은 처벌은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60억이 전부였다.
감옥 같은 아이들의 집 ‘일하고 돈도 확실하지 않다’ 김기승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자신의 생일까지 김기순 교주는 아가돈산 공동체의 신도들에게 일체의 자유로운 생활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려진 것은 1년에 4회의 자유 생활이 주어졌다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생일에 이벤트를 하면서 쉬었지만 세뇌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설명절과 추석 축제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김기순 교주만을 아기로 사랑해야 한다는 신기한 교리는 아버지를 아저씨에게 어머니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단 아가돈산 공동체에 들어가면 울타리 안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도들의 아이들도 학교에 제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지적으로 멀리 더 바쁘게 먹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김기순 교주의 땅은 4천평에서 13만평으로 늘어나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사람들에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김기순 교주. 신도들은 임금을 받으러 가면 맞아 죽을까 생각하고 엄격하게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가돈상은 강제로 뜸을 짓는 일명 불법의료행위도 신도들에게 주름지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일을 했지만 금식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마치 군대와 같은, 아니 감옥 같은 수준의 울타리 생활을 한 아가원. 경기도 이천의 사람들은 아가돈산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아가동산과 김기순 교주 측은 이번에도 아가동산 방송 금지 가처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2001년 7월 당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5년이 지난 당시 아가동산에 대해 방송하려고 했지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서 방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JMS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사실이 있어, 특히 문제가 있는지의 예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넷플릭스코리아와 MBC 조성현 PD는 어떤 사람인가? 눈이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다음 주에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