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8.무상무상의 정중종소중종
히가시야마 법문의 출현 이래 중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선사상이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신수의 키타무네, 에노의 남종과 지선 지배 계열의 무상인 정중종이 히가시야마 법문을 사상적으로 계승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법계에서 보면 신수의 북종 뒤에 홍인의 직제자인 혜능의 남종을 논해야 하지만 선사적인 맥락을 논하기 위해 먼저 무료 정중종을 논하기로 한다 . 그것은 신수의 키타무네와 무료의 정중종은 사상적으로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며, 또한 종밀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 禪源제사집도서’에서도 이들을 ‘식망수심’ ‘종식망 수심종’이라며 같은 계열의 선사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1)
무상(680-756, 혹은 684-762)은 신라 출신으로 최지원 최치원이 찬양한 ‘지옥대사비 지혜대사비’에 이름이 명명되며, 또 최인영 최인의 ‘랑공대사 ‘비로쿠 공대사비’에는 낭공이 정중사 원중사를 참배했다는 기록(주2)이 남아 있다.
따라서 당대에 이미 신라까지 무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무상 관련 자료는 종밀종밀의 『원각경대소초 覺趺經大疏抄』 등에서 무상 법맥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보다 후대의 송대에 편찬된 『송고승전』과 명대에 편찬된 『신승전 신승전』에 그 전기가 실려 있다.
특히 김황본의 ‘역대법견보대법관기’가 발굴되어 보다 구체적인 법계와 행위가 밝혀졌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여 무상선사의 생애와 그 사상을 고찰하고 싶다.
「역대법 뷰」에서는 「속성은 금으로, 신라왕의 발성족성이다.
」(주3)라고 하지만, 「송고승전」에서는 「본래 신라국의 사람이며, 그 국왕의 세 번째 아들 이다.
”(주4)와 “왕의 족성”에서 “제3왕자”라고 기술한다.
게다가 ‘송고승정’에서는 부왕이 죽어 무제한 동생이 즉위하면 무상이 귀국해 왕위를 찬양하는 것을 두려워 자객을 보냈다는 기사(주5)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사실이라면 앞서 언급한 낭공대사가 정중사를 참배한 것을 기록하면서 이를 빠뜨리지 않고, 또 ‘역대법 뷰’ 등 당대 당대에 형성된 자료 에 이것을 기록했을 것이다.
「역대법 뷰」에는 막내 언니의 출가에 자극을 받아 무상이 출가했다고 하지만(주6), 「마츠타카 승전」에는 그 기사가 없고, 신라의 군남사 군난사에서 출가해 , 개원 개원 16년(728)에 장안 장안에 도착해, 선정사 쇼정지에서 현종 현종을 알현해, (주 7) 「신승전」에는 현종으로부터 「무상」의 법호를 받았다고 한다 (주 8). 나중에 촉촉의 자중자원중에서 지선지치를 만나, 그때 처적 학로로부터 「무상」의 법호를 받아, 측천무 후칙 천무후로부터 받은 마납의 마납의를 계승했다고 한다(주 9)하지만, 「역대법 뷰」에서는 스승을 찾아 각처로 돌아갑니다.
후에 ‘가사신의 袈裟信衣’를 촉구해 은거했다고 한다.
(주10)
『송고승전』에는 은거 후, 수행을 매회 입정 입정하여 5일을 넘어, 나중에 성도 청두에 들어가 진지하게 2태행을 실시해, 사람들이 점차 존중해 정사 정희를 세워 주었다 (주 11) 당시 익주 익주장 사장 사장구 겸 경장 겸 젓가락이 방문해, 그 때문에 「안사안사의 난」을 피해 성도에 들어간 현종이 내전에 무상을 맞아 예배하고, ( 주12) 당초는 무상을 의심했지만, 우선 귀의하여 정중사 대사사, 보리사, 영국사 등을 건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절, 원중사에 머물며 중생을 나누는 것을 20여년이 지났다.
『송고승전』과 『신승전』에서는 「지덕지덕 원년(756) 5월(건오월) 19일, 병반 없이 사멸시멸했지만, 춘추가 77세였다」(주 15)라고 한다.
그러나 『역대법 뷰』에서는, 무상은 보응 寶應 원년(762) 5월 5일, 갑자기 무주 무주를 떠올리며, 그를 불렀지만 오지 않으면, 비밀리에 공인 공인 훈선장모에 신 의 신의와 17종의 다른 옷을 보내, 부탁했다고 하고, 무료의 입적을 79세로 설한다.
(주16)
이처럼 다양한 자료에 차이가 보이고 있으며 또 달마의 가사전법 기사는 당시 선종의 정통성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깊이 논의되지 않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무상선사가 성도성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 당시 무주무주의 보당종 보당종과 후대 선종으로 자파에게 유리하게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 따라 무상 선사의 법계도 약간의 차이가 나오지만, 종밀의 『원각경대 석석초』권 3하에서는 정중종의 법계를 「근본은 원래 고조 오조문하에서 나뉘어 온 것으로, 이름은 지선 지치이며, 바로 (홍인의) 십대 제자 중 한 명이다.
원래 자주 자주인으로, 나중에 혼슈 덕순사로 돌아가서 교화했다.
속성 속성이 당나라의 제자처 적 망오가 계승했다.
후, 당선자는 4명의 제자를 두었다.
성도부 청두부 정중사의 금화상 금화봉은 법명이 무상으로, 그 중의 하나이다.
」(주17 )라고 밝혔다.
따라서, 복수의 자료를 종합하면, 「도심→홍인→지선→선적→무상」의 법계로 추정된다.
이러한 법계는 무료 선사상을 고찰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우선 ‘역대법의 견해’에는 무상의 교화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김화상 김화상은 매년 12월부터 정월에 이르듯 사부대중, 백천만명에게 수계수계했다.
엄숙하게 도량을 시설하고, 고자고좌에서 설법했다.
우선, 「소리를 당겨 불꽃」으로 하여 숨을 쉬도록 하고, 생각이 끊어지고, 소리가 멈추고 생각이 멈출 때, 다음과 같이 설한다.
「기억을 없애고(무심), 사고를 없애고(무념), 망령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막망). 혜(惠, 慧)다.
이 삼구어 삼구어는 바로 총지문 병지문이다.
“(주18)
앞으로 무상은 12월부터 정월에 이르도록 수계법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법회는 ‘인성염 불인 聲念佛’에서 시작하여 ‘무억 무념 무망’의 ‘삼구어’가 중심이 되는 설법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 이러한 무료 수계 의식의 설명은 종밀의 ‘원각경대 서서면초’에 좀 더 상세히 실려 있다.
없었지만 자주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계의식은 바로 히가시야마 법문에서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고찰한 것처럼, 도신 선사는 『보살계법』을 찬술해 수계의식을 실시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또 그의 법요인 「일행 미쓰비시」에 득입득입하는 방편으로 「 불꽃과 좌선을 제창했는데, 이것은 무상이 인성 불불로 법회를 시작해 수계가 끝나고 좌선을 했다는 점은 그대로 히가시야마 법문의 전통을 계승했다.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하라카쿠 경대석석의 첫』에는 홍인의 제자로 선습선전 등을 ‘남산염 불문선 종남산 염불문 목종’으로 분류하고, 금화상(무상)과 같은 의식을 하면 설명한다.
로 수계의식을 실시했다는 구체적인 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무상이나 선습 등의 자료로부터 반대로 히가시야마 법문의 의식을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료 선사상은 앞서 언급했듯이 ‘무억 무념 무망’의 ‘삼구어’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 3구어를 ‘용·정·혜’에 배당해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무념’은 명확하게 ‘불꽃 기념불기’와 연계시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 말한다.
「염화기념불기는 마치 거울의 표면이 자주 만상을 비추는 것과 같고, 염기념기는 거울의 뒷면이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 같다」 또 말한다.
‘몰기기기(기, 염기)와 멸(멸, 염멸)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에 간간이 없으면 바로 부처를 보는 것이다.
… … 또 『기신론 기신론』에서 『심진여문 심진여문과 심생멸문 심생멸문이 있다.
)
앞으로 무상이 말한 ‘무념’은 ‘염화기’ 과정을 통해 ‘무념’에 도달하는 경지이며, 또 명확하게 ‘기신론’의 ‘일심이문’을 원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의 틀은 직전에 논한 신수의 북 존슨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종밀은 신수의 북종선과 무료 정중종, 선습의 남산염 불선종 등을 모두 ‘식사심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화염화기’와 ‘무념’은 홍인의 ‘최상승론’을 비롯하여 신수의 ‘대승무생방편문’과 혜능의 ‘6조단경’, 그리고 하타쿠신회의 ‘신회 어록』등에서 모두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같은 사상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타쿠신회나 ‘육조단경’에서는 ‘대승기신론’의 사유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신라 출신의 무상 선사가 중국에 구법으로 종장 종장으로 한 시대를 맛본 사실은 우리에게 친밀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끊임없는 ‘향상일로서 향상일로’를 따라 전개되는 선사상 발전에서 보면 정종정 선사상 한계를 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상적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그를 초월하는 선사상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 점이 바로 무상선사인 정중종이 가지는 중요한 의의라고 한다.
주)
주1)(당)종밀술, 『요원 제사집도서』 卷上之二(『다이마사미』48, 402b), ‘숨망 수심종,… … 또, 모르는 옥경에 취입 하는 분편을 밝게 해석한다면, 시끄러운 곳을 떠나 조용한 곳에 머물러, 몸을 선택해 호흡을 선택해 말 없이 跏趺坐를 하고, 혀는 입장장에 시달리고 마음은 어느 경계에 집주. 이들은 남종의 지치, 키타무네의 신수, 보당, 선선 등의 문하가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
주2) 이현화편, ‘역주조선불교통사’ 상권1(동국대출판부, 2010.), p.489. 「건부 2년(871), 청두에 이르러 다양한 장소를 순례해, 인중 정희에 이르고 무상대사의 영당에 경례했다.
대사는 신라의 사람입니다.
영정에 참배한 후, 후세에 남긴 아름다운 일화를 모두 들어 보면, 당제의 도사로서 현종의 스승이었다.
같은 나라의 사람이면서도 그 시대가 달라, 후대에 법을 구하러 와, 그 자취를 찾아보자 가 된 것이 한슬뿐이었다.
주3) 『 歷代法寶記』(大正藏 51, 184c), 「속성금, 신라왕지족」
주4)(송) 贊寧撰, 『송고승승』(다이쇼 50, 832b), 「본신라국인야.
주5) 이전 책. 「소노 동생 본국 신위 왕관. 懼其각迴其位危殆, 將遣刺客來屠之。相已冥知矣。曰:莫傷佛子。지야 장작자 지도석, 좌우좌지측。逡巡覺壁上似有物下、遂躍起以刀一휘、巨胡身首分於地矣。後門素有巨坈、乃曳去瘞之。復以土攪拌滅其跡而去.질명 상령 소벌 柴者謝之、已不見矣。
주 6) 『 歷代法寶記 』(다이쇼 51, 184c), 『옛날 재본국, 유계 여동생, 하츠시타 료 료수도 할면 서언 지 歸真. 조. 튼튼한 강강, 我豈 무심.
주7)(송) 贊寧撰, 『宋高僧傳』卷19(大正藏 50, 832b), 『於群南寺落髮登戒。 요정사
주8) 『신승전』(다이쇼 50, 999b), 「현종 소견 능양 정정사 호무상」
주9)(송) 贊寧撰, 『宋高僧傳』卷19(大正藏 50, 832b), ‘후입 모자 중 謁智詵禪師. 有處寂者, 異人也. 사마 마노 쿠조 의.사건 현지 그리고 무차원,상 미지노마에. .중야 수키마 나이」
주 10) 『 歷代法寶記』(大正藏 51, 184c), ‘신사 방도, 주유 涷歷, 노도자슈 嶷純寺, 禮唐和上. 연일 지위등, 공양 당화상.당화상 지경 비상인, 변류 좌우 2년.고이 아마타야마, 각지 준준지.당화상견가 인왕 단.밀밀 가랑이 신의. 카츠시 시달 마조사 의의, 노리 천사 與和上, 詵和上與吾, 吾今付囑汝。
주11)(송) 贊寧撰, 『宋高僧傳』卷19(大正藏50, 832b), 「每入定多是五日為度. … … 진행모타노유키.区精舍於亂墓前.
주12)전의 책, “장사장 센 켄 류노스케
주13)전의 책(다이쇼 50, 832c), “시성도 현령 양지, 의경요혹, 노첩 추지, 명도 20명인 예지. 실, 무렵 지대풍 졸기 사석 飛颺直入廳事, 飄簾卷幕. , 보제, 녕국 등 절.
주14) 『기요법 법기』(다이쇼 51, 185a) “후장 仇大夫請開禪法, 淨泉泉寺, 華道眾生, 經二十餘年”
주15)(송) 贊寧撰, 『송고승승』(다이마사랑 50, 832c), 『神僧傳』(다이쇼랑 50, 999b), 『이래 德元年建午月十九日滅きます. 춘추칠십칠”
주 16) ‘공대법 합기'(다이쇼 51, 185a), ‘후지 寶應 원년 5월 15일, 하쿠메모리 흰 벼랑 산 무주 목사. 칠사, 밀송 與무주선사.… …대사시년 칠십구」
주17)(당)종밀 撰, 『圓覺經大疏釋義鈔』卷三之下(卍續藏9,533c) 노이치야.혼시자주인.후각 규모슈 준준지 개화.제자 학외속 성당승.후당생 네코.성도부 원현지 금화상, 법명 무상, 시게이치야”
주 18) 『 歷代法寶記』(大正藏 51, 185a), 「김화상 연년 12월 정월, 與四眾百千萬人受緣。嚴設道場處、高座蛪法。一氣,念絕聲停念訖云 : 무심, 무념, 망망.
주19)(당)종밀 뿌리, 『圓覺經大疏釋義鈔』卷三之下(卍續藏9, 533c), 「그 기수의 의식은 간단하게 이런 것이다.
이 나라에서 지금 관방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설명하면 1, 2개월 전에 먼저 날짜를 정하고 공시하고 승려와 사녀들을 소집해 방등도장을 설치하고 징계 하는 것을 21일 혹은 35일간 한 후에 수계 의식이 끝난다.
모두 야간에 실행했지만, 이것은 외부와의 인연을 끊어 소음을 막기 위한 것이다.
수계 의식이 끝나자마자 잡념을 쉬게 한다 좌우를 시켰다.
멀리서 온 사람이나, 바구니나 사기사는 오랫동안 체재하지 않게 했습니다.
또, 전원에게 7일 또는 14일간 좌선하도록 하고, 그 후에 림을 따라 헤어졌다.
, 율종처럼 계단에 임하는 법은 반드시 대중이 행해져, 관청이 발행하는 문패에 근거해 명칭을 「개현」으로 했다.
이러한 행사는 1년에 1회, 혹은 3년, 2년에 1회 정기적으로 개설하지 않았지만 빈번히 열렸다.
尋日帒示, 소집 僧尼士女, 置方等道場燮懺, 혹은 3757, 後後授法了. , 혹은 아마미 히토노유키류, 쿠스미 불득.
주 20) (당)종밀 撰, 『圓覺經大疏釋義鈔』卷三之下(卍續藏9,534c)「傳香라는 것은 처음으로 대중을 모으는 것과 같다.
주 21) 『 歷代法寶記』(大正藏 51, 185a) 「또 운 : 염불기 유여경면, 노조 만상. 염기 유여경 등, 즉 불능 조견.此不間斷, 즉是見佛.… … 또 기신론우:심신여문, 심생멸문.무념 즉시진여문, 유념 즉생멸문.
동국대학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학술연구 교수. 저서로서 「중국 불교의 거장들」, 「중국 불교 사상사」등이 있어 번역서로서 「조선 불교 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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