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그 중심에서 인류의 진화 방향 ‘도덕’에 대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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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중 무엇을 더 지지하는가?

이 기사는 아직 완전히 생각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내 기사가 귀하의 의견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성설, 성악설. 그 중심을 논한다.


2023년도 1학기에 수강중의 「동양철학의 이해」에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배웠습니다.

맹목적인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의 이야기입니다.

수백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포인트를 정리하면

각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맹목적인 성선설

인간의 좋은 본성을 전제로 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도덕적 감정으로 도덕적 사회를 지향


순자의 성악설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전제로 하고, 그 때문에 예와 법으로 교화하고 교육하며 도덕적인 사회를 지향

*이 글에서 말하는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고 하는 것보다 ‘본능’을 따르기에 가깝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맹목적인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배운 후,

어느 주장을 지지할 것인가소개

의견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순자를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순자가 말하는 ‘악’이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악이나 선도 없는, 사회화에 특화된 동물이며
(2) 자신의 유전체를 보존하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는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높은 사고력과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인간과 다른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는 “뇌”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뇌가 다르더라도 인간도 동물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본능”에 충실한 생명체입니다.

이것은 순자의 의견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의 경우, 인간에게 사단(측은, 수오, 사양, 시비)이라고 하는 「도덕」적 감정이 선천적으로 내재해, 계산이나 목적 없이 타인을 공감해 돕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에게 고유한 감정은 ‘도덕’과는 무관하며 단지 인간의 욕구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즉, 순자가 정의한 나쁜 것은 우리가 자주 말하는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순자들은 도덕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맹자와 순자의 쟁점인 ‘도덕’은 무엇일까요?

도덕은 “양심적인 규범”입니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 또는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간이라면 바로 지켜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도덕’을 우리는 선천적으로 태어났습니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맹목적인 말대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옳습니다만, 그 공감 능력이 도덕적인 능력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도덕은 한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이며 예의이며 교육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각 나라와 집단마다 다른 도덕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화가 되어 어느 정도 도덕적인 규범이 통일화되어 있었지만, 이전에는 차이가 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를 기준으로 프랑스에서는 포옹이나 공/손 등에 키스하는 것이 기쁨의 의미였지만, 한국에서는 과도한 인사법이었습니다.

프랑스 인사법을 교육받지 못한 과거의 사람들은 기쁨이 아니라 무례하다고 느끼는 인사법이었습니다.

또 최근을 기준으로 내가 해외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세치를 당연히 간주했지만 독일에서는 세치를 지나간 결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예로는 아프리카 아스마족의 식문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도덕’이라는 것은 교육의 결과로서 ‘당연하거나 당연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인간’이 진화하도록 ‘도덕’도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이전 로마 시대에는 소와 인간을 겨루는 싸움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행동을, 왜 로마인은 즐거웠을까요? 이것은 당시의 인류가 아직 도덕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인류는 보다 본능에 충실했어요. 그러므로 앞으로 사회의 혼란을 막고 싶다면 아마 ‘법’이 아니라 ‘도덕’이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인류가 ‘도덕’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고 가치관을 형성할수록 그만큼 인류도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을까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요약하면 인간에게 특화된 능력인 공감능력은 서로의 평등한 생존을 위해 ‘도덕’을 형성하고, 인류는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혼란을 도덕을 통해 예방 또는 해결하여 살아남아 라는 것입니다.

즉, 인류는 진화하고 살아남기 위해 ‘도덕’이라는 수단을 형성하고, 도덕도 인류와 함께 진화하지 않습니까?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가 ‘인간의 존엄’을 배우고 기후변화를 통해 ‘생물다양성 또는 생물권’을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은 맹인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성’을 결정하는 요소일지도 모르고, 순수함이 말하는 것처럼 ‘교육과 훈련’을 통해 형성된 무형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덕에 대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생각했을 때,

도덕은 선천적으로 내재한 본능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관습된 개념이므로 오늘 21세기에 순자의 시점이 보다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내 의견입니다.


누락된 기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 생각을 살면서 계속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계속해서 게시물을 게시합니다.

글을 쓰면서 하나 이상한 점은 ‘도덕과 인간이 함께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도덕이 인간의 정체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도 사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이 주제가 충분히 논의 할 가치가 있습니다.


향후 인류가 어떻게 발전하고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유가 있는 분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루도 고생했습니다.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