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국대 성종국
4강신화를 기록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황태자로 불리며 활약했다.
필드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경기에 교체없이 출전(6)하고 대표팀의 최종골까지 기록했다.
가스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아 빨리 붙박이 주전에 발탁되어 탁월한 볼 관리, 완급 조절, 강체력, 슈팅 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였다.
특히 당시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린 루이스 피그를 묶은 역대급 수비력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후 한국 축구를 이끌고 간 것은 박지성, 이영표 등이었지만, 2002년 당시만 보면 가장 현저한 선수는 단연 성종국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박지성, 이영표와 함께 송정국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이미 다른 팀과 계약을 해 버려 박지성, 이영표만 데리고 갔다는 후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 2002년 좌영표-우종구클라인은 대표팀의 역사를 일관되게 최상급의 윙백라인으로 평가됐다.
전성기가 너무 짧아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한국 축구의 최전성기에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인 선수다.
물론 방송에서도 피구를 막는 장면을 사골처럼 우려해 먹기 때문에 너무 식량이라는 팬도 있지만 적어도 그 기간만은 팀이나 선수 입장에서도 역대급 임팩트였다.
또 드래곤을 멈춘 만큼 부조가 되었기 때문에 02-03 시즌 자체도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풀백의 위치라면 활약상이 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서 잊혀진 경우가 많지만 풀백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플레이 스타일
2002 월드컵 때부터 경력의 거의 모든 기간 동안 오른쪽 윙백/풀백으로 많이 회자되지만 히딩크호 초기에는 전력에서 이탈한 홍명보 대신 스위퍼로 중용을 받는 등 모든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2001년 2월, 히딩크호 데뷔전을 마친 후, 수비형 미드필더, 쓰리백의 스위퍼, 포백의 센터백,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 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원톱 제외 필드 포지션은 거의 다소화해 어느 포지션을 세워 그의 주전 출장은 확실해질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에 히딩크호 초기, 히딩크호의 황태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일단 외모도 올라 근육질이 아니라 날씬한 체형에 키도 축구 선수 치기는 작고, 말씨도 운동선수답게 온화하지만 알고 보니 피지컬 능력이 무서운 선수였다.
2002 월드컵 전 경기에서 687분 풀타임을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력이 특히 굉장했다.
게다가, 개는 유럽의 무대에서도 체전을 피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루이스 개를 상대로 어깨의 싸움으로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다.
페이에노르트 손종국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부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 맹활약, 결국 페이에노르트 로테르담이 400만 달러의 이적료로 맞이해 가게 된다.
당시 페이에노르트 외에도 아스날 FC에서 맞이 제안을 했지만 구단 간 사인만 남긴 상태에서 부산 쪽이 시간을 끌어 영국 이적 시장 시간을 지났다고 한다.
화난 송정국은 구단에서 짐을 모두 빼고 집에 와 버리는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후 아직 이적시장이 폐쇄되지 않은 페이에놀트에 결국 이적하게 됐다고 선병지 TV에서 송정국이 스스로 밝혔다.
최근과 달리 그때만으로도 예레디비시에는 유럽 수위 리그로 통하며, 페이에노르트도 2001/02 UEFA컵을 우승해, 2002/03 챔피언스 리그에도 출전한 강호였기 때문에 주전 경쟁까지 고려하면 그다지 유감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금병지 TV에서 그 당시 자신은 히딩크 감독 덕분에 실력이 일취 월장한 상태로 누구와도 이긴다는 마인드였다고 한다.
아스날에 가도 좋았을 것이라고 억울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김병지 선수는 첫 번째 주멘이 됐을 것이라고 깨었다.
송정국은 그때 데뷔 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은퇴 후
은퇴 후 잠시 TV 조선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래도 수원의 시합을 많이 해주는 채널인데 중립적이 아니라 친수원적 해설을 하면 이야기가 있다.
1년차에는 발음이 꽤 부정확하고 말의 리듬과 고저가 안정되어 있지 않고, 긴장한 듯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고, 조금 횡설 수설을 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2년째에 들어간 2013년에는 해설 외에도 방송짱밥이 많이 쌓여 있었는지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 농담이나 선수의 프라이버시, 왕년 전성기 영원히 고통받는 피구 등을 언급하는 종류의 완급조절도 잘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킥오프 후 20분 정도 지나 경기 상황이 급박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온다.
2013년 TV 조선에서 K리그 중계를 중단한 뒤 MBC 축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같은 시기 김성주가 MBC와 축구 중계 캐스터 계약을 맺은 덕분에 아빠!
어디가? 이어 김성주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리고 은퇴 이후는 점차 연예인에게도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스타 주니어 쇼훈 팬,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 도전 1000곡, 기분 좋은 날, 라디오 스타 등에도 출연하고 있으며, 고정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가 대히트하면, 지아파파로 유명해져, 국민의 딸 바보에 등장해, 불멸의 국가 대표 시즌2에도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