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교양 보는 망고입니다.
오늘 코콤은 ‘0원 변호사’ 조영레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 중 부천성고문사건을 재조명한다.
언론은 침묵하고 가해자인 경찰과 이를 수사하는 검찰은 한통속한 상황. ‘상선’은 이미 성고문의 가해경찰을 기소유예로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슬 팔렌 5공정권 앞에 용감하게 대항한 22살 권양과 ‘판원’ 변호사 조용레.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꼬리에 꼬리를 붙이는 그날의 이야기 70회 플롯 리뷰를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붙이는 그날의 이야기 69회 플롯 리뷰 수상한 비밀 작전!
숨겨진 그날의 진실 「C-123기 추락 사건」
출연자: 장현성, 장성규, 장도영
초대 고객: 서경석, 치타, 김
1. 절대 이름을 듣지 마십시오.
2. 만남은 일주일에 2회 수요일과 일요일
3. 약속 시간으로부터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기다리지 않고 가는 것
승애씨는 삶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무덤 앞에서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순애씨의 직장에 대해 물었다.
순애씨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13세부터 여성에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만남을 계속하고 있던 어느 날, 연락이 끊긴 남자가 다시 연락이 와 자수에 가면 지금 볼 수 없다고 말한다.
1986년 7월 인천 한 감옥 접견실에 22세 권인숙씨가 수의를 입고 앉아 있다.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조용레 변호사다.
괴롭히지만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습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운동의 주인으로 모여 도피생활 중이던 조용레는 승애 씨를 만날 때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만나야 했다.
내가 한 일을 노출하고 싶다.
인주쿠씨의 흔적에 방문한 형사들은 부천경찰서를 인주쿠씨를 데리고 가서 주민등록증과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보도록 한다.
인스크씨는 지금까지 타인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인스크는 운동권 학생으로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기 위해 신분을 위조한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권운동이 활발했던 1970~80년대에는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든 운동권 학생들이 많았다.
노동자를 위한 야학 운영 및 노조 설립을 주도하기로 했다.
업주와 정권은 이 학생들을 불온세력으로 삼아 세탁물로 취급했다.
인주쿠 씨가 체포되기 한 달 전 인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이 기세를 올리고 있어 주동자 검거하면 특진으로 표창까지 내리는 상황이었다.
인주쿠씨가 갇혀 있거나 3일째가 된 날, 새벽 4시에 불려 갔던 곳에는 경찰 서장과 경찰이 있었지만, 경찰 서장이 인주쿠씨에게 이렇게 협력할 수 없게 되어 버릴까 하고, 문경장이 인주쿠씨를 따라온다고 한다.
문경장이 인숙씨의 티셔츠와 속옷을 올리면서 입에 넣는 것도 힘든 성적 부끄러움을 느끼는 말을 내뱉었다.
자백을 받기 위해 성적 부끄러움을 이용한 것이다.
고추 가루를 가져오라고 말한 문경장의 고문에 인스크 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기억하는 이름의 민수를 말한다.
민스라는 거짓말이 찔린 다음날 다시 불린 인스크 씨에게 수사계장은 문경장에게 성고문을 지시한다.
수배자들의 사진을 보여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인스크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을 할 때마다 강의에 맞았다.
인주쿠 씨 아버지의 직업을 들어보는 문경장은 후퇴가 생길 우려로 떠올랐다.
이를 알아차린 인주쿠는 식당을 하면 거짓말을 한다.
인주쿠씨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을 걱정한 인주쿠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한 벽을 넘어) 권인숙
그는 OO조차 벗겼다.
나는 벌거벗은 상태가 되었다.
그런 다음 내 의자를 내 의자 앞에 단단히 당겼습니다.
그리고 OO를 만져 내 몸에 내 몸을 비추었다.
“너 같은 여기에서 죽어도 아무 일도 없이 빨리 불어”
나는 더 이상 인간임을 포기했다.
오히려 그가 나를 죽여주는 것은 훨씬 깨끗하고 고맙습니다.
힘없는 소시민을 변호한 조용레 변호사 수임료는 0원이었다.
인스크는 문경찰을 강제추행 혐의로 호소한다.
조 변호사를 포함한 9명의 변호인단이 결성된다.
이것은 경찰과의 싸움이자 5공정권과의 싸움이었다.
그날 있었던 것을 반복해서 표명하는 것도 힘든 권인숙 씨에게 검찰은 가해자와의 대질신문을 진행한다.
6월 7일에 1회 조사한 것이 전부라는 문경장. 경찰서장부터 형사까지 모두 입을 맞춘 것처럼 같은 진술을 한다.
문경장도 검찰에 인주쿠씨를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고소한다.
곳곳에서 경찰의 거짓이 드러나는 증언이 넘친다.
– 6일은 비상소집이 있어 경찰서장까지 출근을 했다는 증언
– 구내 찻집 직원의 진술 “6일입니까? 나는 커피 배달에 갔는데”
– 유치원 죄수 성명 “7일 밤?
검찰의 추궁에 문경장의 친구는 6일 유원지에 놀러 갔다는 것은 문경장의 부탁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고 자백한다.
권양의 고소 사실 속에서 문경장의 성적 모욕을 더했다는 부분은 인정되지 않지만
폭언, 폭행을 했다는 부분은 일부 사실이 인정된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티셔츠를 입은 가슴부위를 3~4회 잡고 폭행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문경장이 권양에게 폭언, 폭행한 것은 조사에 집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과오로
문경장은 이로 인해 10년 이상 경찰에 봉사해 온 경력을 보고 기소 유예* 처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기소 유예
죄는 있지만 가볍고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
즉,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
공안 당국 분석
권양은 급등노선을 신봉
행동대원으로서 목적관철을 위해
어떠한 방법도 상쾌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혁명을 위해 성도 도구화
즉, 왼쪽 경의식이 있는 학생은 수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석방 구명을 위해
사실이 아니라 고문, 폭행, 추행을 날조 주장하도록
철저히 교육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전 관계기관대책회의열립니다.
사건을 뒤집는 의견이 다수로 나온다.
정두환 대통령까지 보고가 올라 기소와 기소유예 중 기소유예로 하라는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조용레 변호사는 사건의 진상을 우리의 손으로 직접 알리기로 한다.
조용레 변호사 직접 작성한 변호인단의 고발장을 10만부를 인쇄해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고발장은 사본으로 사본을 거쳐 전국적으로 퍼졌다.
국민은 진실을 요구하고 경찰은 회피하기 위해 급속했다.
마지막 변론을 하는 조용레 변호사.
변호인은 우선 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 있는 사람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삼가야 했던 이 사람은 누구
전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아는 이름이 없는 유명인
얼굴이없는 아이돌이 된이 처녀는 누구입니까?
국가, 사회, 우리
그녀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는지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눈물 없이는 기억할 수 없는 ‘권양의 투쟁’
어떤 오욕과 탄압이라도 끝나면 깨지지 않았다.
그 불굴의 용기와 진실 때문에
눈물이 있는 헌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이 재판은 거꾸로 한 재판입니다.
여기에 묶여서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은
이 부드럽고 순수한 음란한 처녀가 아닙니다.
바로 이 처녀에게 인간의 놀이기구를 쓰고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못생긴 만행을 저지른 문경장
문경장의 범행을 교사, 방조한 모든 사람
문경장을 지키다
그 범행을 숨기려는 모든 사람이
여기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신분증을 위조한 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는다.
조변호사는 검찰의 기소 유예를 잘못했다고 하고, 가해자는 법정에 세워달라고 법원에 요청한다.
재정신청서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가 166명이었다.
딱딱한 전두환 독재 정권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1988년 4월 9일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만에 인주쿠씨와 변호인단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
한 달 후 성고문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다.
문경장은 자신의 모든 죄를 부인한다.
당시 인스크 씨는 진실을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한다.
조영레 변호사는 성고문의 사실을 알리고 있던 그 순간부터 재판을 받은 그날까지 항상 인주 옆을 지켰다.
조용레 변호사가 순애씨를 만난 이유는 바로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려는 전태일 열사 때문이었다.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던 조용레 변호사는 신문에서 정태일 열사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곧바로 공소로 달렸다고 한다.
정태일 열사는 생전에 근로기준법의 책을 들고 상담하며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으면 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레 변호사는 늦었지만 그의 친구가 되기로 한다.
조용레 변호사는 정태일 가족을 마나와 평화시장 여공순애씨를 만나 글을 썼다.
그렇게 3년 만에 원고를 완성한다.
책이 완성된 1976년은 군부독재 시대에 책을 출판하는 것은 꿈도 보이지 않는 시대였다.
그래서 전 태일평전은 일본에서 출판된다.
저자의 이름도 가명으로 출판된다.
그가 떠난 지 한 달 후에 조영레 변호사의 이름으로 전 태일평전이 출판된다.
조영레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검사시보에 쓴 글
내가 하려고 하는 제일 보도구는 핀 의자 또는 참고인,
가족에게 친절하게 접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친절한 자세를 흩어지지 않도록
어쨌든,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의 우위를 나타내거나,
상대를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하지 않도록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이것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도 된다면
인간성에 걸리는 우리의 모든 신뢰와 희망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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